대구(大丘)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를 말한다
자가 현기 호가 약봉이며,본관이 대구이다.서거정의 종현손이다.부친은 영의정에 추증된 함재 서해이며,모친은 청풍군수를 지낸 고성이씨 이고의 외동딸이다.1588년(명종13)에 안동의 외가댁에서 태어났다.그 다음 해 부친 서해가 23세로 세상을 떠났다.
서성은 3살 때 모친과 서울로 와서 숙부 춘헌공 서엄에게 10여년간 글을 배우고 이이와 송익필의 문하에서 수학했다.1583년 이이가 탄핵받자 태학생으로 항소하여 신변하였다.
1586년(선조19),서성은 29세에 알성문과에서 을과 1위로 합격하고,1590년 검열,봉교를 거쳐 전적에 오르고 감찰로 옮긴 후 예조,병조 좌랑을 역임하였다.문신정시때 수석하여 구마를 하사 받았다.1592년 병조의 낭관이되고 호소사 황정옥의 종사관이되어 왕자 임해군과 순화군을 호위하게 되었다.
1595년 경상우도 관찰사를 거쳐,1596년 동부승지,병조참의,숭문원 부재조가 되고 강원감사가 되었다.그 다음 해 해부승지,도승지에 오르고 첨지중추를 거져 이후 황해감사,함경감사 및 호조참판,평안감사를 제수 받았다.이후 한성부 판윤,형조판서,병조판서가 되고 1607년에 경기감사가 되었다.광해군 즉위로 추부에 서용되었고 이후 개성부유수가 되었다.
1612년(광해군4) 김직재의 무옥에 걸리고 계축옥사에 연루되어 유배가 시작되었다.단양,영해,원주 등지로 11년간 귀양 살면서 모친상과 부친상을 당하였다.
1623인조반정 이후 형조판서에 제수되고,판중추부사,형조판서,병조판서가 되었다.
1624년(인조2) 이괄의 난 때 왕을 호종하고 판중추부사,변조판서등을 역임하였다.
이후 승록대부로 승격하였고,이후 장악원,혜민서의 제조가 되었고,예조판서를 지냈다.
1631년(인조9) 74세로 별세하였다.영의정에 추증되었고,시호는 충숙이시다.대구의 구암서원에 재향되셨다.저서로는 약봉집이 있다.
<南池耆老會圖(李起龍筆) 소재지:서울대학교박물관,원판>
과환록(科宦錄)에 올린 대구서씨 680人⟶종보 100호에 등재
✴과환록:조선후기 문신 홍재철의 관직생활을 기록한 일기,필사본 (藏書閣韓國本解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