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大丘)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를 말한다
公은 판중추부사 약봉(藥峯) (諱 渻, 諡 忠肅)선생의 차남으로 1575년(乙亥) 2월16일 출생하였다.
1605년(乙巳)에 사마시에 급제하여 내시교관으로 입사 한 후 형조, 이조정랑, 사복시 첨정, 종친부 전첨을 역임하고 1635년(乙亥)에 단양군수에 부임하였으며 1636년 병자호란에서 민병을 지휘하여 입지를 수호하기도 하였다.
임기 후에는 1644년(甲申)에 중추부경력을 배수하였으나 나가지 않으시고 제천에 머물러 계시다, 1646년(丙戌) 포천으로 돌아와 11월 21일 72세로 돌아가셨다.
3남 승지공(諱 祥履)의 호종한 훈공으로 좌승지로 증직되셨고, 그 후 증손 효희공(諱 宗悌)이 정성왕후(영조대왕비)를 배출하니 이조판서로 증직되셨다.
公의 배위(配位) 贈 貞夫人 光山金氏 修義副使 휘 희(僖)의 따님으로 1574년(甲戌) 12월12일에 출생, 1614년(甲寅) 1월 24일에 돌아가시어 공의 묘 좌측에 합폄(合窆)되시었다.